제목: 겨울이 오기 전에(딤후4:9-18) 1997.7.13. -김창한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넓은 들에서 맹수에 쫓겨 어느 낡은 우물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물의 중간쯤 되는 곳에 담쟁이 덩굴과 같은 식물이 있어서 그것을 붙잡고 몸을 의지할 수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물의 밑바닥을 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큰입을 벌리고 한입에 집어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기가 붙잡고 있는 담쟁이 덩굴의 밑 뿌리를 몇마리의 쥐가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어서, 그 덩굴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같습니다. 우물 바같에는 맹수가 미친 듯이 으르렁거리며 우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꼼짝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그네는 자기의 멸망을 각오하지 되고, 그러한 멸망은 극복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나그네처럼 어쩔 수 없는 그런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죽음의 불안을 잊기 위해서 사회제도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고, 다양한 오락과 여흥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향해 가는 그 엄중한 현실은 우리를 비껴가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가장 폭력적인 현실이자 가능성"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현실"이란 말은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경험적 실재라는 것이고, "가능성"이란 그러한 경험적 실재가 비껴갈 수 없다는 절망적 인식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바로 나라는 실존이 수용하든 하지 않든 닥쳐오는 "권력이자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는 본문은 죽음에 임박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박해와 죽음의 벼랑 끝에 섰지만, 그러면서도 대화하는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또 본인 스스로도 그 분의 말씀이 주는 힘을 신뢰하고 수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삶의 면모는 바로 일장 첫 줄부터 드러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의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의 약속대로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참 생명을 경험한 그가 하나님과 예수에게서 온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그의 신앙의 아들이자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기원합니다.

또한 바울은 3절부터 디모데와 헤어진 후 줄곧 그를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8절에서는 주를 위하여 갖힌자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하여 12절 말씀처럼 그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난이 그를 결코 좌절시킬 수 없다는 확신이 2장 9절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3장 1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열정과 신앙의 확신에 진한 감동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의 이러한 좌절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앙의 열등감을 줄지도 모릅니다. 바울의 삶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바울 서신들을 영웅의 모험담이나 모험가로 읽으면 그것은 완전히 바울의 의도를 완전히 곡해하는 것입니다. 온갖 역경을 견디며 자신이 목표를 일구어 내는 난세의 영웅으로 대접받기를 바울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서신서에서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은 자신의 영웅적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역시 인간적 괴로움과 현실이 주는 고난을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 4장 9절에서 그는 디모데에게 할 수 있는 한 자신에게 빨리 오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외로움과 동료들이 주는 배신감을 그는 절절히 적고 있습니다. 10-11절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고...누가만 함께 남아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심부름꾼의 모습이 아닌 한인간이 느끼는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절에서 그는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적고 있습니다. 위의 구절들에서 우리는 바울이 매우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옷이 없으면 두고 온 한벌 옷을 기억해 내서 가지고 오라고 했을까요.

그는 이 긴 편지를 쓰는 마지막 인사 전에 다시 한번더 강조합니다. 4장 22절이 마지막 인사말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21절이 그의 서신의 결론인지도 모릅니다 "겨울전에 어서오라"

이 말에서 그는 앞으로 닥칠 추위의 강도를 예상하고 그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을 알게 됩니다. 아니 편지를 쓰는 그 순간에도 그는 오한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바울이 이렇게 장황한 편지를 쓴 것은 옷 한 벌이 다급해서 쓴 것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한 가난한 학생이 부모님께 편지 쓰는 것을 연상해도 될 것입니다.

부모님 전상서. 부모님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신지요... 할머니, 동생 안부묻고, 농사는 잘되는지, 송아지는 잘 자라는지, 늘 반기는 복실이도 보고싶다는 등,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해서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효자다운 결심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의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마지막 단락 접속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오라, 돈이 좀 필요합니다. 다음주까지 오만원만 부쳐주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외람되지만 바울도 그랬는지 모릅니다. 추위와 외로움이 주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옷을 가지고 속히 오라고 한 것이 그의 편지의 목적인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진짜 사실이라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친 한 인간이 겪는 모습을 더욱 우리의 가까운 현실이자 경험으로 받아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학생이 시골에서 자식 뒷바라지에 고생을 마다 않는 부모님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편지를 쓰기까지 수십번 망설였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부쳐줄 오만원의 돈을 마련하려고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돈을 꾸시거나 아껴둔 쌀을 시장에 내다 파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갚기 위해 허리가 한번 더 휘시는 아버지!!! 아버지!!!를 머리속에서 지울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의 편지 목적을 쓰지 못해서 망설이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그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추운 방에서 매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그렇지만 그 궁핍함을 견딜 수가 없어 무거운 펜을 든 한 학생의 모습이 바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바울의 서신에서 복음 전파의 결연한 의지나 투사적 모습보다는 추위를 두려워하고, 외투가 주는 따스함을 갈망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 더 애정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원하는 그의 음성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인간, 바로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이 던져주는 가혹한 벼랑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제가 처음 말씀드린 맹수에 쫓기는 그런 벼랑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벼랑을 극복할 해결방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이 나타나서 맹수는 어린양과 뛰놀고, 뱀은 독이 없는 순한 동물로 만들게 할 수 있다는 맹목적 신앙의 차원을 강조하고 쉽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맹수에 쫓긴 그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두가지 중 하나는 분명히 일어납니다.

하나는 줄이 끊어져 죽든가 어떤 형태든지 살아 남는 길이 있든가 둘중에 하나입니다. 그 현실은 여러분의 현실이고 저의 현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맹수에 쫓긴 그 사람을 구원받는 것은 오직 신비한 기적밖에 없다고 믿는 한 바울이 고난을 당하고 추위에 떨면서 전한 복음의 참된 의미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반대로 결국 줄이 끊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더 큰 절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사이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대답이 결코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맹수에 쫓기다 우물에 숨은 이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설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걸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인간적인 바울의 모습에서, 아니면 믿음의 투사로서의 바울의 모습에서?

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복음의 전파자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