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창한

본문(막, 16, 40-41)

80년대를 불꽃처럼 살다가 암으로 젊은 나이에 타계한 김남주 시인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 [학살 2]에서 그는 80년 광주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밤 12시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낮 12시

우리는 이 시에서 시라기 보다는 극적인 현장 르뽀문과 같은 내용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 날을 녹화한 광주 비디오를 보지 않아도 그날의 끔찍한 참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학살 1, 2, 3]과 [전사 1, 2]는 복사해서 돌려 읽을 정도로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많이 읽혔습니다. 우리는 김남주에게서 한 시대를 만나, 시인으로서, 혁명가로서, 전사로서 살다간 사람의 고뇌와 열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20년의 성상에 이르고 있고, 그날의 끔찍했던 아픔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날을 증언한 시인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광주의 학살의 현장과 1천여 희생자들도 우리의 뇌리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의 그날의 끔찍한 순간이 우리에게 공명되어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쥴리어스 시이즈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콜롬부스가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말입니다.

광주학살은 꽃들이 산 들녘에 피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다

는 하나의 연대기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우리의 경험의 현실성입니다.

광주는 다만 1980년 5월 따스한 날에 일어났다는 한 역사적 사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광주는 더 이상의 우리의 의식에 살아있지 않습니다.

광주는 더 이상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실이 아닙니다.

다만 광주는 다만 역사적 사실. 그렇습니다. 과거의 한 계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는 결코 광주의 경험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있었던 따스했던 그날,

오월 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1980년 5월 일천여 민중이 학살되었다는 그것입니까?

그리고 그 외에 그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이상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저는 이 오월의 그 끔찍했던 순간을 그날에 대한 생생한 증언보다는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통해서 오히려 더 절절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광주에 대한 역사적 증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습니다.

왜 광주를 더 구체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영화를 광주학살의 한 역사적 사실을 기대하고 보았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을 전혀 해독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14-5세 가량의 한 소녀가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어머니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미치게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마을 아이들에게 미친년이라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물에 빠지게 되거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강간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광주에서 일어났던 어머니의 죽음과 그 현장의 끔찍한 장면을 자신의 경험적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는 이 소녀를 통해서 광주를 다시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찢기고 버림받은 순진했던 한 소녀의 자학적 모습,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자신의 오빠로 알고 무작정 따라다니는 그녀를 강간하고 때리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한 노동자. 이 노동자는 자신이 역사의 피해자, 소외된 자이면서 가학자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광주의 직접적 피해자인 미친 소녀와 그녀의 아픔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는 사회의 소외된 한 노동자를 통해서 광주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히 상징적으로 표현된 영화 중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광주는 무엇입니까? 어쩌면 1880년 오월 광주는 우리에게 전혀 무의미한 숫자 놀이에 불과한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광주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광주의 오월 광장의 학살을 통해서 한 희생자인 소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광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끔찍했던 80년 5월의 그날은 갔지만 그날의 찧긴 가슴을 안고

지금도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가냘픈 한 소녀.

이 것이 바로 지금도 존재하는 광주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 36년간의 강탈과 억압은 역사적 연대기 속의 한 계기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그날의 상처를 안고 외롭게 살아가는 정신대 할머니를 통해 진짜 일제 억압의 실상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광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미쳐 떠돌아다니는 한 소녀를 다시 짓밟거나 그냥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영화 [꽃잎]의 원작자 최윤은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의 첫 도입부에서 한 떨기 �育矛낮� 우리 옆에서 지고 있는 소녀를 만날 때 이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어쩌다가 도시의 여러 곳에 누워 있는 묘지 옆을 지나갈 때 당신은 꽃자주 빛깔의 우단 치마를 간신히 걸치고 묘지 근처를 배회하는 한 소녀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당신에게로 다가오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말고, 그녀가 지나간 후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찢어지고 때묻은 치마폭사이로 상처처럼 드러난 맨살이 행여 당신의 눈에 띄어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주십시오. 당신이 이십대의 청년이라면, 당신의 나이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야생의 빛나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먼지 낀 때에 절어 가닥난 머리채에 시든 꽃송이로 화관 장식을 하고 꼭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은 초점 잃은 시선으로 머리채에 꽂힌 꽃보다 더 붉은 웃음을 흘리면서 당신 뒤를 쫓아올 것입니다. 그녀가 당신의 상의나 팔꿈치를 뒤에서 잡아당길 때, 원컨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당신에게 자석처럼 접근하는 그녀의 손을 되도록 부드럽게 떼어놓아 주십시오. 그녀를 무서워하지도 말고, 그녀를 피해 뛰면서 위협의 말을 던지지도 마십시오. 그저 그녀의 얼굴을 잠시 관심 있게 바라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최윤은 "우리"라는 시점으로 환원하여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그녀의 미소가 우리 주변에 떠돌고 있었고, 머리에 시든 꽃을 꽂고 꽃자주색 치마를 팔랑거리면서 오빠의 있지 않은 무덤앞에 가볍게 내려앉는 한 소녀의 영상이 아주 잠시 우리의 뇌리에 스쳤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죽은 오빠의 친구들이고, 이들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주 잠시 뇌리를 스치는 정도를 광주를 경험했습니다. 지난 번 타계한 한 정신대 할머니의 뉴스 보도를 통해서 우리가 일제를 잠시 경험했듯이 말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의 본문을 이 한편의 영화와 소설에서 다 이야기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려셨나이까 라고 외쳤을 때, 3년 동안이나 따르던 제자들마저 그를 버렸습니다.

이 마가 복음 본문에 예수께서 임종하실 때, 마지막까지 지켜본 사람은 백부장 외에 여인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시관과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마지막 단말마의 고통을 지켜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수용한 사람들입니다. 가까이 서서 보지 못하고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주변부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무덤에 가장 먼저 간 사람도 여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여성이 남성보다 의리가 더 있고, 믿음이 더 강해서라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다만 그들이 예수의 고통을 그들이 바라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자신의 경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떠나는 사람도 동일하게 고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떠난 사람의 고통을 안은 살아남은 자, 소녀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엄마의 죽음에서 오는 공포와 자신 때문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자책,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 현실이 주는 고통이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그리고 죽음

그리고 자신들이 의지하며 따랐던 여인들이 예수의 죽음으로 오는 박탈감,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는 슬픔,

이 여인들은 16장 2절에서 안식일 후 첫날 매우 일찍이 무덤으로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기대하면서 아침 일찍 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3절에서 그들은 "누가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 걱정까지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의 죽음을 승인하면서 자신의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찾아간 것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안식일 바로 다음날 일찍 이였다면, 그들은 내내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삶의 영역 일부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부터 무덤가는 그날까지 그들은 온통 죽은 예수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향품을 사다가 장례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뇌리를 스치는 정도로 경험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의 초점을 광주에서 학살된 소녀의 어머니의 죽음이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그 역사적 사실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어머니의 죽음은 바로 소녀의 현실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죽음, 즉 여인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별할 때, 이별은 떠나는 사람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아니 떠나는 사람은 새로운 경험 속에 그 이별의 순간을 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아서 떠나보내는 사람은 바로 그 이별의 현장에서 지금까지의 기억과 떠난 그 이후 이별의 순간과 혼자 남게 된 그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죠.

오! 하나님. 저들의 기억을 지워주옵소서! 저들의 기억을... 광주의 저 한구석에서 아직도 망각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 당신의 아들, 딸들을...

이방인은 우리들은 다만 오늘도 일상의 세월을 살 뿐입니다.